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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望, 如月大和

(자해, 살인, 인체묘사, 유혈 등의 트리거가 존재합니다. 조심하며 읽어주세요.)

 

 

 

 

 

 

 손바닥을 멍하니 내려보았다. 방울저가는 핏방울이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점차 차가워져만 가는 핏방울의 온기가 진득하기 그지없었다. 

 

 

 희망. 내가 그토록 바라온 희망이 이런 모습이었던가. 그런 말을 주문 마냥 머릿속에서 수백 번 되뇌었다. 내가 바라던 희망? 그게, 어땠더라. 목이 쉴 새라 소리쳐대는 무의식에서 눈을 돌리며 작게 지껄였다. 그딴 건 기억나지 않아, 하고.

 

 

 이런 게 아니었다. 내가 바란 건. 사랑하는 가족들이 내 일상을 함께 해주고, 친한 친구들과 걸어나갈 수 있는, 그토록 찬란한 세상이었다. 그토록 희망적인 세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희망적인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는가? ... 모르겠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내 이럴 줄 알았어, 하며 생각을 접으려던 순간에, 무의식이 속삭였다. 넌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지금이 어떤지. 당연하지 않아? 모든 건 네 손에서 탄생했으니까. 그 속삭임에 정신이 들었다. 내려다 보고 있던 손바닥의 피가 차다 못해 굳어져 가고 있었다. ... 황급히 손수건을 꺼내 굳어가던 피를 거칠게 문질렀다. 붉게 쓸려나간 손등의 피가, 쓰라렸다.

 

 

 

 지금? 희망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 희망의 꿈을 꾸고 있다. 

 

 절망이 사랑하는 가족들의 일상을 끊으려 들었고, 친한 친구들의 발목을 자르려 들었다. 그런 공격은 너무도 조심스럽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가던 평화로운 어느 날, 보았다. 절망이 내 사랑하는 희망에게 칼을 들이밀고 있었다. 이미 목까지 다다른 칼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워 있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껏 해봐야 내 찬란한 세상이 부서져가는 장면을 멍하니 눈에 담는 것, 그 뿐이었다. 무능력한 자신을 탓하며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죽어가는 걸 보는 게 내 운명이었다. ... 그럴 바에는 내가 먼저 죽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내가 먼저 죽는 게 절망에 물들지 않고, 희망인 채로 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것마저도 너무나 큰 욕심이었을까.

 

 우리가 왜 죽어야 돼. 무의식 저 너머의 어딘가에서 속삭였다. 우리는 아무 잘못 없어. 저 사람들이 나쁜 거야. 그러니까, 우리 없애자. 저 미친 절망을.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내가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잖아. 그런 생각을 머릿속으로 몇 번씩이고 되새겼다. 내가 저 절망을 죽여 버리면, 나도 결국 그 사람들과 다를 게 없어. 저 사람도 어느 누군가의 희망일지도 몰라. 그래, 저 사람도 언제는 나와 같은 꿈을 꾸었겠지. 어쩌면 지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걸 거야. 단지 그 꿈이 내 꿈을 망쳐야만 이루어지는 것일 뿐인 거고. 내 희망을 밟아서 다른 사람이 행복하다면, 그거 나름대로 괜찮은 거 아닐까? 그렇게 애써, 마음 속의 추악한 욕망을 짓밟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포기하면 돼.

 

 ... 멍청하긴. 그 사람의 사정 따위는 내가 상관할 게 아니야.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 행복이니까. 저 사람의 희망? 꿈? 그게 내 행복을 부수려 한다면, 내가 그걸 먼저 부수면 되는 거야. 어떻게든. 그 이기적인 속삭임이 머리를 계속 휘감았다. 애써 짓밟은 욕망을 일으켜 세우며 내 손에 칼을 쥐어주었다. 그래, 난 원래부터 이기적인 사람이야. 입 안에서 씁쓸함이 감돌았다.

 

 

 발걸음을 옮겼다. 짙은 분홍빛의 피의 웅덩이가 끈적하게도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 기분 나쁜 질척함에 한껏 짜증이 솟구쳤다. 그 찰나, 길거리에 나뒹구는 누군가의 살구 빛 나뭇가지가 보였다. 신경질적으로 그 나뭇가지를 찼다. 핏빛의 웅덩이가 보기 좋게 일렁이고, 잔잔해졌다. 

 

 

 그래, 내가 절망을 없애자. 그 사람들의 사정이 어떻든 그들은 절망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 다짐하며 희망에 칼을 들이민 절망의 손을 먼저 잘라냈다. 다시는 내 희망을 넘볼 수 없도록. 행복했다. 날 죽이려 든 절망이 비참한 표정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니 어쩜 그리도 기분이 좋았는지. 그 때를 생각하면 몸에 찌릿, 전율이 흘렀다. 심장이 멍청한 사랑에라도 빠진 모양처럼 두근거렸다. 혀가 아릴 정도로 달콤한 초콜릿을 한 입 베어 물은, 그 행복감이 마음 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당시는 아니었다. 그 때라면 아, 죽으려 했었나. 바들거리는 손에 들린 그 질척한 칼을 목에 갖다 댔다. 여전히 따스함을 간직한 핏방울이 천천히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절망도 결국 사람이었다는 걸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 역겨워. 재빨리 그 칼을 집어 던졌다. 손바닥에 흔적을 남기며 흐르는 피를 옷깃에 문질러 닦아냈다. 수많은 죄악감을 씻으려는 모양새로, 거칠게. 핏빛으로 물든 손이 무척이나 쓰라렸다.  

 

 

 차고 넘치는 죄악감에 나를 죽여가는 순간에도, 절망은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모두 내게 칼을 겨누고 있었다. 희망이라며. 반드시 처단해야만 한다고. 웃음이 나왔다. 내가? 희망이라고? 이런 짓을 한 나도 희망이라 보는구나. ... 신기하네. 나도 결국 같은 살인자인데. 하하. ... 절망을 죽여서 그런 건가. 그럼 절망을 죽인 건 살인이 아닌 걸까? 절망을 죽인 게 살인이 아니라면, 절망은 사람이 아니구나. 아, 그러네. 이제서야 모든 게 들어맞았다. 그러니까 난 희망적인 일을 한 거야. 난 초고교급 희망, 키사라기 야마토니까. 피 비린내가 짙게도 배어 들은 손으로 다시금 칼을 붙잡았다. 칼을 잡은 손은 더 이상, 쓰라리지 않았다.

 

 

 

 저 어딘가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높고, 애절한, 누군가의 목소리. 어라.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린데. 그런 생각에 발걸음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했다. 킨조? ... 내가 생각해도 비현실적이야. 킨조가 범죄자의 머리를 깨면 깼지, 깨질 사람은 아니니까. 메카루? 메카루도 마찬가지인데. 미카코? 아냐. 미카코 목소리는 저것보다도 더 낮아. ... 그럼 누구지.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머리가 또 다시 멈춘 기분이다. 그 사실에 어쩌면 안심하며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내가 모르는 목소리면 절망이겠지. 어쩜 소리지르는 것도 저렇게 쓰레기 같을까. 

 

 

 전에 저런 비슷한 목소리를 들은 날이 있다. 아파. 죽고 싶어. 차라리 날 죽여줘. 사라지게 해줘. 마음 속 어딘가였다. 무엇일지는 뻔했다. 마음 속에 그나마 남아있는 연민, 양심. 별 쓸데 없는 것들이 소리치고 있었다. 다시금 그 속에 남은 질서가 마음과 머리 이곳 저곳을 찌르는 기분이었다. 오늘도 그 날인 모양이다. 슬슬 이유 없이 마음이 쓰라리기 시작했다. 하여간 되는 게 없네. 옅은 선홍 빛의 손으로 머리칼을 거세게 헤집었다. 

 

 뭐가 문제야. 이제 와서. 내가 만든 세상을 봐. 지금은 피로 가득하지만, 결국 절망들은 많이 사라졌다고. 이런데도 내가 비양심적이야? 내가 절망이야? 그럴 리 없잖아. 물론 살인은 죄지. 그것만 따지면 결국 난 사형 받아도 마땅한 사람이야. 그런데 저런 건 사람이 아니잖아. 뭐, 소수의 사람이 섞여 있었을 수도 있지만. 어찌됐든 난 잘 하고 있는 거야. 내 임무인 희망을 지키기 위해서 이러는 거니까. 안 그래? 응, 그렇지. 그러니까, 그런 생각 더 이상 하지 말자. 이렇게 잘못한 게 없는 일로 자책해봤자 나만 쓸데 없이 힘들어질 뿐이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여유롭게 흘러가는 구름이 저 어딘가로 넘어가고 있었다. 저 푸른 하늘과도 같은 희망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피 웅덩이로 잔뜬 물든 바지의 밑단이 찝찝하기 그지 없었다.

"난 초고교급 희망, 키사라기 야마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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